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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by bluemarine2022 2023.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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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민족주의란?

1975년 4월 30일, 자유월남이 월맹·베트콩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51일 만에 멸망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보트피플이 106만 명, 이중 11만 명이  굶어 죽거나 해적들에게 죽었으며, 95만 명은 요행히  살아서 해외이주를 하였다.
또, 월남 패망 후 공산정권에 의해 약900만 명이 처형당했다.
당시 월남은 경제력이나 군사력 면에서 월맹, 베트콩보다 월등히 좋았다.
거기에  월남은 세계  최강인  미국군을 비롯하여  한국군, 호주군 등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면 왜 이런 월등한  국력을 가진  월남이 훨씬 약한 월맹과 베트콩에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멸망당했는가?

아래는 월남 패망당시 주월 공사로  최후까지  교민탈출을 돕다가 적에 체포, 5년간 억류생활을 한 후 석방된 고 이대용 공사의 증언이다.


"내가 체포되기 전에 사이공 시내에서 직접 목격한 사실은 월맹 군인들은 소금만 가지고 하루 두 끼 식사를 겨우 할 정도였고, 속옷은 구경조차 힘들었다. 월맹군은 전차부대를 제외하고는 군화도 없어 타이어를 잘라 끈으로 묶어 질질 끌고다니며 전투를 했던 것이다"
 


이런 군대가 최신무기로 칠갑을 한 월남 군대를 붕괴시켰다. 부패한 군대, 분열된 사회는 최신 무기를 고철로 만든다.
 
 파리 휴전협정 체결 과정에서 외국의 일부 언론은 '키신저가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휴전협정을 너무 서두르고 있다' 며 우려했다. 키신저가 수상한 노벨평화상은 자유월남의 시체 위에서 얻은 「비극의 노벨상」이었다.

이대용 공사는 포로수용소에서 고문 등으로 몸무게가 78kg에서 42 kg 이나 빠지는 등의  혹독한 시련 속 에서도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27년이 지난 2002년  당시 이대용공사를 고문했던 즈엉 징 톡이 한국대사로 부임했다.
그는 이대용 공사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장군이라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으로 ‘越南 패망의 현장 목격자 李大鎔 (당시 駐越대사관 공사)의 惡夢,
越南의 赤化 과정과 한국 사회의 요즈음 사정‘ 을 치면 나옴, 참조 바람)

그러면 왜 이런 월등한 국력을 가진 월남이 훨씬 약한 월맹과 베트콩에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멸망당했는가?
최근 (2019년)에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연합회에서 주최한 월남패망에 대한 세미나에서  발표자 서병호 박사의 주장에 의하면 월남 패망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모호한 민족주의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월남의 공산주의자들은 0.5%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민족주의를 표방하여  국민들을  현혹했다.
서병호 박사는  월남패망 전  한국대사관에 근무했던  여직원들의 예화를 들어  당시 월남국민들이 민족이라는 말에 얼마나 현혹 되어 있었는가를 말했다.
1969년에 북 베트남의 지도자 호지명이 죽었다.
그러자 주월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월남 여직원들이 호지명의 죽음을 애도하는 검은리본을 가슴에  달고 출근했다.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여성이라면  입사할 때 모두 철저한   신원조회를 받았다.  
그녀들 모두 사상이 확실하였으며  가정도 중류이상으로 공산주의와는 먼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녀들은 당시 적국의 지도자인 호지명이 죽자 애도하는 검은 리본을 달고 출근했다.
이에 한국직원이 그녀들에게 어떻게 적국의 지도자가 죽었는데  애도할 수  있느냐? 하고 물었더니  호지명은 우리가  존경하는 민족의 지도자님이라도  대답했었다.


그 몇 년 뒤의 일이지만, 월남패망 시 미국유학을 갔다온 월남  공군조종사가 미국의 비행기로 월남 대통령 궁을 폭격했다.
당시 대다수의 월남국민들은  자기들과 싸우는 월맹을 민족주의자들이 통치하는 나라이며, 자기들이 살고 있는  자유월남을  미국의 앞잡이 들이 통치하는 나라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좋은 무기를  원조해주고  세계 최강의 군대들이  파병해 줘도 소용이 없다.
자고로 공산주의자들이나  독재자들이  민중들을 속일 때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이 바로 민족주의이다.
독일의 히틀러가  독일 국민들을 속일 때도 그러했으며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때도 그랬다.


지금 북한의 김일성 일가가  체제유지를 위해 인민들을 폭압할 때 사용한 것도 바로 민족주의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우리 대한민국을 멸망시키려는 세력들이  이용하는 것도 바로 민족주의 라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민족하면 무조건 최고의 정의이며 최고의 진리하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민족을 반대하거나 , 방해하면 무조건 모두 다 처형해야 할  민족반역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류역사를 보면,- 자세히 후술하겠지만- ,민족의 이름으로 민족을 멸망시키거나 민족을 배반한 경우가  굉장히 많다.


물론 민족은 좋은 것이며 귀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러 하듯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악용하면  그 피해는 더욱 크다.
한 예로 원자력이 그렇다.
원자력을 잘 선용하면  인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지만 반대로 원자력을 악용하면  인류를  멸망시키는 가장 무서운 흉기가 된다.
마찬가지로 민족주의를 잘 선용하면 국민을 단합시키고 나라를 부강케 하지만  민족주의를 악용하면 나라를 멸망시키며 국민을  불행하게 한다.
나는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거짓된 민족주의에  현혹당해 나라가 멸망할 가능성이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

-자유월남 같이..


1. 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의 정의


민족에 대한 정의는 매우 폭 넓으며  다양하다.
그러나 보통 우리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민족이란 혈통이 같으며 언어와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이러한 민족관은 한마디로 혈통적인 민족관으로 민족을  가족의 넓은 의미로 보는 것이다--인종적 민족주의, 객관적 민족주의, 감성적 민족주의  등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러나  민족주의에 대하여 세계적인 권위자인 코넬 대학의 베네딕트 앤더슨 교수

 

민족은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초기에  사회가 보유하는  각양의 집단감성이 대내 결속과  대외 팽창 국가적 수준으로 재편성된  상상의 공동체이다

 

라고 했다(윤형숙 번역)

 


즉, 앤더슨의 민족주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한 공동체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필자는 앤더슨의  이 민족주의에 공감한다.


백제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의 셋째 아들인 온조가  세운나라이다.
즉 고구려와 백제는  혈통적으로는  같은 민족이다.
그러나 이 두 나라는 700년 동안 얼마나 피터지게 싸웠는가?


백제는 오히려 일본과 훨씬 더 친했다.
백제가 망했을 때 일본은 수 만 명의 군사를 보내  백제를 도왔다.(백강 전투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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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런 상황에서 고구려와 백제를 같은 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가까운 조선시대를 보자.
조선은  자기가 낳은 친자식이라도 비婢에서 낳은 자식은  노비로 삼았다.
노비는 양반인 자기 생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못했으며
아들취급은커녕 사람취급도 받지 못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홍길동이다.  
홍길동전은 광해군 때의 사람인 허균이 쓴 소설 책이지먄 홍길동은 연산군(?)때의 실존인물이다.
허균은 이 홍길동을 모델로, 시대적 배경은 세종 때로 하여 홍길동전을 썼다.
조선 양반들은 적자 아들이 없으면 서자 아들이 있어도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양반  친척 중에서 양자로 입양하여 대를 잇게 했다.


조선은 이렇게 철저한 신분제 사회로  아무리 혈통적으로 가까워도  신분이 다르면  동류로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은 귀화한 중국의 양반들은 인정해 주었으나  같은 혈통이라도  노비자식은 사람취급을 하지 않았다(조선은 많을 땐 전 국민의 30-40% 가 노비)
이러한 사회에서는  인종적으로  같다고 할지라도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있을 수 없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유정 등의 조선 쇄환사들이 일본에 끌려간 포로를 데려오려고 갔었다.
그런데  포로들 중의 상당수는  자발적으로 귀국을  거부하고  일본에서 살기를 원했다는 쇄환사들의 보고가 있다.
왜? 조선 사람이 귀국을 거부하고 일본의 포로로 살기를 원했을까?


그들은 대부분  조선에서는 노비의 신분이었다.

그들은 조선에서 노비로 사는 것 보다  일본에서 포로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조선시대에는  민족이라는  의식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역사에는  혈통적으로는  같은 민족이지만  종교 등의 이유로 원수같이 싸우다가 갈라진  나라들이 많다.
파키스탄과  인도와 방글라데쉬가 그런 나라들이다.


반면에 혈통은 달라도  다인종의 사람들이  국가를 형성하여 행복하게 사는 나라들도  많다.
오늘 세계 최강의 국가인 미국이 그러하다.
미국은 인종적으로는 다른  다인종의  사람들이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정신아래 모여 만든  나라이다.
청나라와 몽고제국도  순수한 단일 혈통의 민족이 세운나라가 아니다.
또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는 유대민족도 혈통적 민족이 아니라 종교적 민족이다.

과거에는 인간의 이동이 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단일 혈통의 단일 국가가 대부분이었으나 앞으로는 국제화 시대를 맞이하여 국제결혼, 해외이민 등의 이유로  단일 혈통의 국가는 점점 적어질 것이며 다인종의 국가가 대세일 것이다.


특히  많은 국가들은  초저출산으로 인해--(한국은 세계 최저출산국)--  해외인구의 유입이 아니고서는 산업과 경제는 물론 국가의 존립까지도 어려운 지경이다.  


세계가 이렇게 변하는데 우리만 과거의 단일민족 단일국가관에 매여  혈통적 민족주의만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최근 어느 역사가가  신라의 김춘추는 외국군대를 끌고 와서 같은 민족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민족반역자라고 했으며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다.
참으로 무서운 독선이다.


전술했지만  삼국시대 당시에는 민족이라는 의식이 없었다.
언어도 틀렸다.
동족이라는 의식이 있었다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면서 서로가 죽고 죽이는 싸움을 했겠는가?

 

그런데 민족의식도 없었고 언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민족의 이름으로 정죄한다는 것은 참으로  사악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따진다면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세종과 이순신을 오늘날의 인권법을 적용하여  성 폭행범으로  정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역사의 평가는 그 당시의 시대성과 사실성이 생명이다.
과거의 사건을 오늘의 잣대로—그것도 객관적 근거도 없이-  단죄하는 것이야 말로   무지와 교만의 극치이다!
 
2. 민족에 대한  2가지 개념


민족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가 있다.

2-1.원초론 :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 사전>에 민족을 <일정한 지역에서 오래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집단>이라고 풀이했다.

이러한 민족의 개념이 이제까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해 왔던 민족의 개념이었다
즉 이러한 인종적 공동체의 영속성에  주목하면서 민족주의가  종족· 조상·언어·영토라는 원초적  유대에 기초해 있다고  보는 견해로 학자들은 이를 원초론이라고  부른다
원초론은 언어, 종교 ,관습, 공통의 문화유산 등과 같은 객관적 기준을 민족의 기초로 강조하는  문화민족개념 내지 객관주의  민족이론 연관되어 있다 

2-2. 도구론:
이에 대비하여 민족주의란 결코  영원한 실체가 아니며,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데올르기 라고 보는 도구론이 있다.
이 도구론은  국가민족이라는 민족개념과 연결되며, 이는 민족공동체에 자신을 귀속시키고자 하는 민족 구성원의 주관적의지가  민족을 만든다는 주장으로  주관적 민족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도구론-국가민족- 주관주의적 민족개념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주로 영·미·프랑스 학자들이다.
민족이라는 말은 영어의 nation에 해당하는 말로 프랑스 혁명이후 유럽에서 근대국가가 생겨나면서 생긴 말이다.
예를 들면 당시의 프랑스는 지금의 프랑스와 같이 하나의 국가가 아니었다.


각 지방마다 여러 종족들이 서로 다른 언어 전통을 갖고 살았으나 프랑스 혁명을 통해 자유 평등 박애라는 기치 아래 프랑스 민족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즉 민족이라는 개념은, 국가 형성의 도구로 만들어진  공동체의식이라는 주장이다.

반면에 이러한 시민혁명의 경험이 없는 독일이나 러시아 등 중· 동부 유럽국가들과 일본은 원초론-문화민족론-객관주의적 민족주의가 환영받았다.  

필자는 원초론 보다는 도구론을 찬성하며 앞으로의 세계는  원초론 보다는 도구론적  민족주의가 대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3. 한국에서의 민족이라는 단어유입


Nation이라는 단어가 일본에 유입되어서는 국가, 족민, 국민,인종 등으로 번역되어 사용되었으나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 민족이라는 말이 한국에 유입된 것은  1907년 황성신문에 처음(?)이었으며 이후  급격히 사용되었다.
당시 조선은 나라가 없었기에 나라 國을 사용하지 못하고 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했으며 백성들은 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빼앗긴 나라를 상기했다.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민족이라는 말을 좋아했으며  민족이라는 말에 함몰되어 왔다.

"북한의 민족주의 --우리민족끼리"


아래는 대한민국 예비역장성단이 운영하는 장군의 소리(유투브 방송)에서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권순철박사(국민대 겸임교수)의 강의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노재봉교수(전 국무총리,전 서울 대 교수)는 "민족이란  주권적 개인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민족을 역사 문화 언어 혈통의 공감대를  형성한 집단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권순찬 박사의 '낭만적 민족주의 비판'이라는 박사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민족이란 Nation의 번역어인데, 16C 영국에서 국가의 대중, 주민으로 사용하였다.
그 이후 주권을 가진 주민으로 사용되었고 루소에 의해  Nation 개념이 확립되었다.
근대에 와서는 민족이란 주권을 가진  국민, 즉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 공동체,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과 동의를 전제로 한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쓰인다.

 

프랑스의 정치사학자  에르네스트 르낭은 "민족의 존재는 매일 매일의 국민투표이다"라고 말했다.

민족이란  출발부터가 민주주의와 함께 한 개념이다.


민주주의가  없는 혈통적, 종족적 언어적 민족개념 등은 전근대적 개념이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전 근대적 민족개념이 자리 잡았는가?
대한제국시절 일본에서는 nation이라는 단어가 국민,  민족 등으로  사용되었으나 이 단어가 한국에 들어올 때는 나라가 없기 때문에 민족으로 번역되어  들어왔다.

(국민은 주권의 개념이 있으나 민족은 주권의 개념이 없음. 그래서 국민대신 민족이라는 단어로 번역 )

우리국민의 70%가 혈통을 중시. 이런 혈통중시 사상이  혈통적 민족주의 (낭만적 민족주의)를  쉽게 받아 들임

 

낭만적 민족주의= 감성적, 비이성적, 비합리적, 비주권적  민족주의
근대적 민족주의=이성적, 합리적, 정치적, 주권적 민족주의
근대 민족주의의 가장 중요한 한 요소= 주권의 유무 여부
낭만적 민족주의 例--히틀러의 민족주의, 일본의 군국주의 민족주의, 북한의 민족주의 

4. 북한의 민족주의

 

북한의 민족주의는 더욱 모순적이다.


북한은 본래 민족이라는 용어자체를 거부한다. 사실 유물론적인 공산주의 자체가 처음부터 민족주의를 거부한다.
공산주의는 브르죠아 계급을 착취자, 원수로 여기고 동족보다  외국의  노동자계급을 더 우대한다.
마르크스는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와 함께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1957년 김일성 발언을 보면 알 수 있다.

"민족보다 계급이 우선이다. 민족주의는 인민들의 친선관계를 파괴하고 민족적 리악과 인민들의 이익에도 배치된다"

 

1986년 김정일에 의해 처음으로 민족주의 말이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 조선민족은 우수하다 자긍심을 갖자"

 

당시 동구 공산주위가 몰락을 보면서 북한의 체제유지를  위해 민족주의를 이용하였고

북한은 그 이전까지는 주체사상 주장. 이후 북한은  주체사상의 외피로 민족주의를 만들었다.


북한 민족관= 주체민족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처럼 민족이라는 말 속에는 민족자주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북한은 이점을  이용하여 조선민족제일주의를 주창.
북한이 민족주의를 대외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불과  30년 밖에 안됨(2019년 기준).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는 확실히 특정한 의도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우리 국민들이 북한의 우리민족끼리를  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바로 이 낭만적 민족주의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체제위기를 모면하려한 김정일의 작품이다.


1990년대 북한은 식량부족으로 인한 고난의 행군, 북 협상 불이행으로 인한 지원중단과 미국의 대북압박정책  등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 당했다. 북한은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2000년 6월 15일  615 공동선언 (김대중 김정일 회담)
2002년  제 2 연평해전
김대중 발언-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 .북한은 핵을 만들 능력도 의지도 없고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2006년 10월 북한 1차 북핵 실험
2007년 10월4일 10·4선언--615공동선언의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 가자  (노무현 김정일 회담)
2009년 5월  북한 2차 핵실험
2010년 3월 26일  천암함 폭침사건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사건

위의 사례들을 볼 때 우리민족끼리는 북한의 함정이며 위험을 내포한다.

 

북한은 우리민족끼리를 이용하여  반외세민족공조개념을 창출한다.
2010년9월 북한은 노동자대회에서  우리민족끼리는 통일전선의 일환이라고 발표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의문 1. 
북한은 자기들을 김일성민족이라고  말함.
같은 민족이 되려면 우리가 김일성 민족이 되든지 아니면 북한이 김일성을 포기해야 하는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의문 2.
우리의 최대명절은 설이며 북한의 최대명절은 김일성이 태어난 태양절 4월15일인데  우리가 같은 민족이 되려면 우리가 설날을 버리고 태양절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북한이 태양절을 버리고 설날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김일성민족=북한주민 중에서도 김일성을 추종하는 북한의 핵심세력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민족끼리의  우리 속에는 대한민국의 시민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例 자유월남도 공산화 된 후 106만 명을 처형했다.
북한이 말하는 용어에  속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말하는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을 정확히 알고 대응하는 것만이 정답이다.

근대적 민족이란 자유와 주권이 있을 때만이 민족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북한은 근대적 민족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동포는 될 수 있을지라도 우리민족은 아니다.

북한 주민에게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누리는 자유와 ,주권이 없기 때문이다.

1998년 9월5일 북한은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 서문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시며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시다”라고  선언함으로 김일성민족의 개념을  헌법에 명시했다.

다시말해, 북한이 내세우는 김일성민족이란 개념에서는 우리 남한주민들을  다른 민족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이다.



5. '민족' 개념에 대한 결론


민족주의는 국가형성을 위한 공동체 의식으로
국가는 혈통에 의해서가 아닌
주민의 자유의지에 의해  국가정신에 참여하는 공동운명체이다.

그런데 국가정신은 바로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은 자유민주주의이다
그러므로 같은 민족이란 헌법적 민족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적 민족주의에 동참하는 공동체라고 할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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