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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교육교부금과 교육 포퓰리즘 실태

bluemarine2022 2024. 2. 17.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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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8, 경남 창원의 구암중학교가 학교 통폐합 기금으로 3학년 전교생이 공짜 유럽여행을 다녀온 것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구암중과 구암여중은 지역 학생 수 감소로 2017년부터 구암중으로 통합했는데, 그 이후 10년간 교육통합 인센티브로 교육 환경 개선 및 교육 활동 지원사업, 교육경쟁력 강화사업 등 다양한 기금을 지원받아왔다. 그러다가 20228, 국외진로체험학습을 명목으로 구암중 인솔교사 23명을 포함한 3학년 전체 학생이 810일 동안 무려 9890만 원의 예산을 들여 미국, 캐나다, 유럽을 다녀왔다. 학교통합을 명목으로 오랜 기간 이렇게 많은 예산을 써온 행태에 일부 시민단체들은 비판하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많은 교육 예산이 편중되게 되었을까? 그러나 이것은 비단 경남교육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 시도교육청의 예산 남발은 현행 교육 예산 편성과 지출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넘쳐나는 교육교부금

 

매년 전국 시도교육청에게 할당되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은 내국세로 충당되는 엄연한 국민의 혈세다. 내국세의 20%가량이 교육부 예산과 시도교육청 운영예산으로 투여되는데, 내국세는 우리가 내는 소득세, 법인세, 부동산세 등 국민과 기업이 열심히 벌어 충실하게 낸 세금이다. 한 가계에 있어서도 교육비 20%는 상당한 비중인데, 국가 세금 20%가 교육재정에 연동된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비중과 액수이다.

<중앙일보> 5 22일 자 기사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예산이 1년 전보다 10 7,011억 원 늘어난 75 7,606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고 기획재정부와 교육부 자료를 인용해 보도했다. 초중등 교육 지원에 쓰이는 교육교부금은 그해 걷힌 내국세에서 20.79%를 의무적으로 떼어내 조성하게 돼 있다. 나라 재정이 어렵던 1970년대에 교육 예산만큼은 안정적으로 확보하자는 차원에서 이런 내용을 법으로 못 박았지만, 2000년대 들어 출생률의 급격한 감소로 교육교부금 규정은 골칫거리가 됐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교육청이 입학지원금 지급, 수학여행비 지원, 태블릿PC 무상 지급 등 선심성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34,653달러(세계 32, 2024년 기준)를 기록해 34,555달러(33)의 일본을 제쳤다. 그러나 학령인구의 절감 속도는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어 세수 대비 일정 비율로 자동 할당되는 교육세(지방교육교부금)는 날로 불어나고 있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 수요에 근거해 교부금을 결정하지 특정 비율을 정해 놓고 할당하지는 않는다. 나라 재정이 어렵던 1970년대는 내국세에 고정비율 할당제를 시행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인구구조도 변하고 교육 수요도 이전과는 다르다. 1970 100만 명을 넘긴 연간 출생아 수는 2020 30만 명으로 급감했다. 학생 1인당 교부금은 2013 625만 원에서 2022 1,528만 원으로 2.5배나 뛰었다.(국회예산정책처) 교육세의 대부분이 고정적인 인건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학령인구 대비 필요 이상의 세수가 흘러가면 불필요한 세수 낭비가 생기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올해 더 많이 써야 다음 해에도 더 많이 받는다?

 

더 이상 예산이 필요하지 않아서 반환 요청을 했는데, 행정실에서 그럴 수 없다고 통보받았어요.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딱히 필요하진 않지만 써버리듯 예산을 0원으로 만들었어요. 지출을 처리하는 일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좀 찜찜했어요.”

종종 학교 행정에서 예산 결산을 해야 하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오는 얘기다. 비단 일선 학교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교육청 사업보고서를 면밀히 살펴보아도 이런 문제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남은 예산을 왜 반환처리할 수 없는 것일까? 교육교부금 시행령에 따르면 각 교육청은 장관이 정한 수치 이상의 예산을 쓰도록 권면하게 된다. 남은 예산이 전체의 4% 미만이면 2년 뒤 인센티브를 받고, 4% 넘게 남으면 페널티를 받게 된다. 시행령이 이렇기에 예산을 남기지 않고 쓰려고 교육 공무원들과 일선 학교들은 혈안이 되기 마련이다.

이 제도는 2021년부터 시행되어 지금까지 총 10개 교육청이 575억 원의 인센티브를 받았다고 TV조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한마디로 각 시도교육청으로 하여금 남은 예산을 써버리도록 서로 권면하는 구조인 것이다. 이쯤 되면 예산을 내려보내고 지출하는 일선 공무원과 교사를 탓하기보다는 이런 구조 법령을 만든 국회와 국무회의가 이상하다고 볼 수 있다.

다행히 20236월 대통령령으로 방만하게 운영되어오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와 개편이 시작되었다. 학령 인구의 급속한 절감이 가져온 넘치는 세수가 교육계 포퓰리즘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면밀한 감사와 점검이 필요한 때이다.  

 

 

 초·중·고와 대학 간 예산 불균형

 

이렇게 시도교육청으로 내려가는 교부금의 액수는 날로 늘어나 환영도 못 받는 골칫덩이가 되어가는데, 정작 대학교육은 재정 악화로 연구환경이 열악해지고 있다. 늘어나는 세수와 줄어드는 학령인구로 인해 우리나라 초·중·고 공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에 올랐다. 중고생 1인당 공교육비(14,978달러) OECD 국가 중 2위다.

그러나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11,290달러)는 최하위권이다. 미국(34,036달러), 영국(29,911달러) 1/3 수준에 불과하다. 선진국 중 대학생 공교육비가 초등학생(12,535달러)보다 적은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초·중·고 교육에 쓰이는 교육교부금을 내국세와 연동한 것은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인재의 기초역량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학력 수준이 높아질수록 고등교육 투자가 늘어야 하는데 지난 20년간 이를 방치하다시피 했다. 학벌을 중시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성향과는 다르게 정작 대학의 경쟁력과 교육 수준은 해외에 현저히 뒤처지고 있다. 시도교육청엔 예산이 넘치지만, 지방대는 비가 새도 건물을 보수하지 못하고, 전자도서 예산이 부족해 남의 아이디를 빌려 쓰는 실정이다. 더욱 고도화, 전문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대학 재정의 악화는 국가와 산업 경쟁력의 퇴보를 예고할 수밖에 없다. 대학에 대한 국가 재정은 충분하지 않으며 오랜 기간 등록금 동결로 낙후된 시설과 열악한 연구환경 등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다.

교육은 개인의 발전뿐 아니라 국가의 발전으로 직결되는데, 이런 비대칭, 불균형적인 재무구조로는 개인의 발전도 어렵고 더더구나 교육이 국가의 미래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현금성, 현물성 예산 지출 상태

 

매년 눈두덩이처럼 불어나는 전국 시도교육청의 예산은 지출 처리에 속도를 내기 위해 일회성 현물 또는 현금성 살포로 이어진다. 경기도 교육청이 지난 2021~2022년에 거대한 예산을 지출한 대표적인 사업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코로나 팬데믹을 명목으로 대규모 예산들이 많이 풀어졌다. 이런 사업들은 경기도 교육청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전국 시도교육청에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졌다.)

 

- 교육급여 사업(소득 상위 50% 대상, 전국 초·중·고교생 1인당 연간 약 50~70만 원)

- 태블릿 PC 보급사업(해당 사업은 첫 해에만 1,818억 원, 2022년에는 1,429억 원이 투입되었으며, 2023년에는 약 2,878억 원을 들여 70만 대를 추가 보급)

- 코로나 시기 방과후 교과 보충프로그램 무료수업(1,2253,000만 원)

 

교육의 형평성과 평등한 교육권 보장은 물론 매우 중요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예산의 지출 방식이 지나치게 현금과 현물 중심이라는 점과 수혜자의 선택권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서비스라는 점이다. 공돈이기에 쉽게 받고 쉽게 쓸 수 있는 돈이라는 것이 함정이다. 스마트 기기, 태블릿 PC 보급 사업은 일선 교육계에서 아직 논란이 많다. 납품과 계약 과정에서도 이미 특혜 편중 논란이 있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교육 도입에 대한 교육계의 숙의와 합의, 교육과정에 대한 적용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디지털 교육에 대해 학교와 교사, 그리고 학생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물성 생색내기식 예산낭비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은 태블릿 PC를 당근마켓에 팔고 있다는 제보가 많이 들어왔다. 참 씁쓸한 현실이다.

 

이제는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이 체감하는 예산 낭비 몇 가지를 살펴보자.

 

    멀쩡한 교실 기자재 및 비품의 수시 교체

 

A 교사는 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교실에 들어가 보니, 55인치 TV65인치 대형 TV로 바뀌어 있었다. 교실 크기에 비해 너무 과하게 크다는 생각도 들고, 아이들은 고개를 들어 보기가 목이 아프다고 했다. 설치해 주시던 행정과장님은 예산이 내려와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곧 학교 전체 쪽지에 이전에 쓰던 몇 년 안된 멀쩡한 최신식 TV 36개가 철거되었는데, 교사들 중에 원하시는 분 있으면 가져가라(?)는 공지가 왔다. 지금으로도 꽤 사양이 좋은 멀쩡한 TV가 왜 저렇게 바뀌었으며, 가져가도 되는 것인지가 고민되었지만, 버리는 것도 돈이니 가져가 주는 게 도와주는 건가 싶기도 했다.      

코로나 시기에는 36개 교실에 엄청난 크기의 공기청정기가 각각 2대나 설치되었다. 사실 창문을 열면 열었지 공기청정기를 그렇게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큰 공기청정기를 설치할 때 정말 필요한지 충분히 고려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충분히 쓸 수 있는 교실 비품들도 수시로 매번 교체해준다는 행정실의 안내가 계속된다. 멀쩡한 이전 물품들을 버리는 것이 마음이 왠지 편치가 않다.

 

    학생들이 신청했지만 듣지 않는 보충수업

 

B 교사는 고등학교 1학년 부서의 방과후 담당이다. 코로나 때 생긴 수업 결손 등을 보충해 준다는 명목으로 경기도 교육청에서 교과 보충 집중 프로그램항목의 예산이 떨어졌다. 한 학교당 거의 수천만 원 가량 된다. 공짜 수업이기에 학생들도 교사들도 수업 모집이나 운영에 대한 부담은 없다. 학생들도 자비를 들여 듣는 수업이 아니기 때문에 시험 기간에는 학원 특강을 핑계로 신청한 방과후 교과 보충수업을 빠지고 가버리기도 한다. 수익자 부담이 아니기에 이런 들쭉날쭉한 출석에 대해 교사들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때로는 방과후 교사들은 1~2명의 학생들을 앉혀 놓고 수업을 하게 되기도 한다. 공짜 수업이라서 원래보다 그 가치를 인정 못 받는 듯한 아쉬움이 들지만, 선생님들은 편하게 수당 받으니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무료수업이 아이들에게 과연 얼마나 교육적 효과가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또 남은 예산으로는 업무 회의비 명목으로 교사들 회식을 몇 번 한다. 보통 학교에서 진행되는 방과후 수업은 수혜자 부담이 원칙인데, 코로나 시기 이후로 학교별로 배당되는 예산이 커지면서 이런 식의 무료 수업들이 많이 개설되었다. 경기도 교육청 기준으로는 2022년 결산 기준 1,225 3,000만 원이다. 다른 시도교육청을 다 합치면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일 것이다.

 

    예산 태우기 행사

 

학년 부장인 C 교사는 올해 내려온 예산을 지출하기 위해 돈을 쓸 수 있을 만한 사업들을 구상한다. 그나마 아이들을 데리고 뮤지컬, 음악회, 전시회 등을 보러 가는 행사가 가장 진행하기 수월하다.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간단한 점심, 심지어는 기념품까지도 사줄 수 있을 만큼 예산은 넉넉하다. 교우관계나 학교생활에 적응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한 문화체험 행사라고 하지만, 요즘 아이들도 학원이다 뭐다 어찌나 바쁜지 정작 취지에 맞는 행사 참여자들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원래의 취지가 무색할만큼 그저 되는 아이들을 여기저기서 모으기 바쁘다.  이 모든 것이 지속적이거나 어떠한 분명한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고 진행되는 행사들이 아니라는 것을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알고 있다. 다만 남은 예산들을 빨리 써버릴 수 있고 생색낼 수 있는 가시적인 행사로서 선생님도 학생들도 모두 부담 없는 시간이다. 그러나 국민의 소중한 혈세로 이루어진 교육예산이 전국적으로 이렇게 가볍게 쓰이고 있다는 것은 반드시 재고해 보아야 할 문제다.

 

맺으며

 

세금을 잘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잘 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금을 알뜰하게 쓰지 못하면 성실한 세납자들의 노고가 헛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육 자율화를 외치며 교육의 방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엄청난 권력의 교육감제를 20년간 시행해왔다. 우리 국민들은 세금의 20%를 교육세로 내면서 과연 얼마나 교육받고 싶은 권리교육하고 싶은 권리에서 자율성을 누리고 있는가. 그리고 사람을 키워낸다는 교육세는 남아도는데, 왜 대한민국은 저출산 인구 소멸이라는 비극적인 미래를 마주하고 있는가.

불필요한 예산이 넘쳐나면 당연히 교육 포퓰리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교육감직도 진보냐 보수냐의 정치권력으로 양분화되는 것을 보았다.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는 이념의 문제라기보다는 더 현실적으로는 세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일 것이다. 현금성 살포로 낭비되고 있는 교육 예산을 교육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며, 미래 인재를 키우는 데 투자되어야 할 소중한 교육 재정에 대해 국민들도, 교육계도, 정치인들도 너무나 무관심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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