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기세덱 Melchizedek, 그는 누구인가? - 히브리서 7장 3절 유대인을 축복하는 한민족의 영광스러운 사명을 예표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알려져 있는 멜기세덱에 대한 언급은 매우 신비롭고 베일에 가려져있다.
크게 총 4번에 걸쳐 나오는데,
- 창세기 14장 20절 :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 시편110편 4절 :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 히브리서 6장 20절 :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 히브리서 7장 3절 :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멜기세덱은 과연 누구이며, 이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미하는 것인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의 법도를 따라 구원을 받고, 유대식의 축복을 받아야 할 터인데,
하나님께서는 뜬금없는 이방인을 통해 축복을 받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훗날 선민이라 했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을 통해 축복을 받게 될 것을 예표하는 사건이다.
마치, 창세기에서 에서와 야곱의 장자권이 뒤바뀌는 사건처럼, 그리고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장자권이 뒤바뀌는 사건처럼
훗날 하나님의 먼저 선택된 백성, 장자 이스라엘 민족이 영적 장자권을 잃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 민족이 오히려 유대인들을 축복하는 권세를 얻게 되는 길이 열릴 것을 암시한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세기 14:18-20 KRV
아브라함이 살렘왕 멜기세덱에게 떡과 포도주를 바치는 장면.
이 장면이 최초의 십일조였고,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멜기세덱은 유대인들이 무시하던 이방인이었으며,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백성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으로부터 축복기도를 받으며 힘을 얻어 언약의 행보를 계속해 나간다.
멜기세덱은 이방인이었지만 아브라함을 축복권을 가진 자로서 이것은 택함받은 선민의식을 가진 유대인들에게는 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그의 등장은 유대주의 사상의 전체적인 흐름에는 뭔가 의아한 사건이었다. 이 성경의 말씀이 과거의 어떤 사건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질서, 이루어질 예언적 사건을 드러내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느니라
유대인 족보에는 아브라함을 축복할 수 있는 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왜 굳이 이방인의 축복을 받아야 했던 것일까?
택하신 선민과 이방인들의 기묘하지만 조화로운 연합은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신비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바울이 증언했던 로마서 한 새사람의 증거와 일치한다.
하나님은 멜기세덱의 등장을 통해 언약의 백성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지만, 또한 마찬가지로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음을 증거한다. 이로서 절대자 앞에서의 겸손을 말하며, 또한 이방인이지만 주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선민을 축복할 수 있는 직임을 얻음을 말함으로서 그의 은혜가 폐쇄적이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는 무한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멜기세덱의 말처럼 "만유의 주재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돌들을 들어서 아브라함의 조상을 만드시는 분이시며, 그의 언약은 타의 주장에 영향받지 않는 절대적며 온전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낮은자가 높아지고, 처음된 자가 나중되며 나중된 자가 처음되는 끊임없이 역동하며 흘러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본질임을 말한다.
하나님의 호의와 은총은 계급적인 것도 아니며 폐쇄적인 것도 아니다.
그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그의 기름부음을 갈구하는 자에게 지위를 막론하며 역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 사건을 통해 그 은혜가 이방인들에게로 흘러가 열매맺기 시작했으며
원가지는 유대인을, 접붙인 가지는 이방인들을 말한다.
하지만 유대인들을 무색케하는 멜기세덱의 존재라 할지라도 이방인들이 자긍하지 말 것은,
원가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버리실 수 있었던 하나님께서 하물며 이방인들을 그렇게 못하실까보냐 하며
자긍심을 경계하는 것이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로마서 11:17-21 KRV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앞에서 겸비하며 그의 은혜를 겸손히 구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축복권을 누리든, 축복을 받는 은혜를 누리든 주님의 호의안에 거할 수 있을 것이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로마서 11:21-23 KRV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따라 우리가 멜기세덱처럼 유대인들을 축복하는 직임으로 부름 받은 것은, 유대인들도 시기하기까지 사모하는 은총이다.
또한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에 취하여 언약에 멀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 이방인들을 통해서 그들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는 겸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로마서 11:24-25 KRV
그의 은혜가 역사할때 모든 이전의 율법과 계급을 뛰어넘어, 영원하시고도 새로운 언약과 중보의 직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미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깨어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전 세계 유대인들이 유대 땅에 올 것을 돕고 있다.
그리고 잃어버린 유대인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축복을 전하는 통로로 쓰임받고 있다.
한국교회, 한민족이 멜기세덱처럼 이방인으로서 선민 유대인들을 회복시키는 축복을 주고 있다.
성경에 멜기세덱의 비밀은 마지막 때 유대인들을 축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영광된 한민족의 사명을 예표하는 사건이다.
할렐루야!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깨어, 멜기세덱의 영광스럽고 신비로운 축복을 누리는 한민족이 되길 기도한다.